회중 찬송

나는 왜 예배 시간 전에 와서 앉아 있을까?

습관에 따라

 예배를 준비하기 위해

 기도하고 싶어서

 아님 늘 앉던 자리를 차지하고파......

 etc........

 

 예배당에 들어서면 녹음된 음악자료를 스피커를 통해 들을 수 있다

 예배시간이 임박해 지면 잠시 후 Prelude / 전주곡

 예배 전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곡이 들려진다

 날라리인 내가 절로 기도가 하고 싶어진다.

 [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] ~~~~

전주곡을 듣는 내내 마구마구 상상되어진다

 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그분이

 [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] 이 부분에서 마지막 가사인 [신]은 마디가 바꿔 첫 박에 있는 가사이기에 꽝 크게 칠 수도 있지만 

소울있는 피아니스트가 여리게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순간 기도는 더 간절해진다.


 곧이어 예배의 시작이 선포되고 [우리 주 하나님 ] 입례송을 불렀다

 오랫동안 입례송로 사용되어 진 이 곡은 전주를 듣는 순간부터 예배를 잘 드리고 싶어진다.


 우왕~~~ 예배를 인도하는 사회자의 마이크 볼륨이 최고(짱)이다

 여기서 [짱] 이란?

 마이크 소리가 크지 않아 성도들이 노래하는 소리가 들린다는 의미이다.

 중간이후 찬양대의 화음이 들리면서 예배를 잘 드리고 싶은 맘이 화~~악 들었다

 그렇다....예배의 순서를 맡은이 ( 찬양대, 사회자, 기도자, 기타)들이 예배를 돕는다는것은 이런것인가보다.

가끔 사회자 마이크는 내 찬양소리를 내가 들을 수 없을 만큼 큰 소리로 귓가에 앵앵거려 입을 떼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

물론 성도들이 잘 모르는 곡조를 리드해야 하기에 그럴 수 있다

그러나 찬양대가 이 일을 감당해야하고

찬양대가 없다면 피아니스트가 이 역할을 해야 한다


 참회의 기도를 하자는 사회자의 제안에 고개를 숙였지만

 어느 때는 눈만 감고 멍하니 있다가 [ 내 모습 이대로]를 부르곤 한다.

 그러나 대부분은 이 시간에 염치없는 기도를 드리며 용서를 구한다.


 회중 찬송......[ 겸손히 주를 섬길 때 ]

 푸시시 더 자고 싶은 잠을 깨워 눈곱 떼고 예배에 간 날이면 회중 찬송 부르는 시간에 또 멍떼린다

 그러나 피아니스트는 어찌하든지 이렇게 잠에서 덜깨 몽롱한 나를 일깨우려 더 감정을 싣어 반주한다.

 그 피아니스트의 잘 정돈 된 꽉찬 반주는 서서히 나의 입을 열게한다

 찬송이 하고 싶어진다.

 가사가 맘에 새겨진다.

 더 간절해진다.


 대표기도자의 기도가 끝나자 찬양대가 부르는 부드러운 기도송은 나의 맘을 간구하게 하며

 나는 이 때 한 번 더 간절한 맘을 주께 드린다.


 봉헌과 함께 드려지는 (회중을 대표하는) 찬양대의 특별찬양.

 그렇다 회중을 대표해서 찬양대가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이다

 그래서 스크린에 가사를 띄워 회중의 이해를 돕고

 지휘자가 있어 음악을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게 한다

 찬양대의 찬양이 끝나면 박수로 화답한다. 

(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찬양대가 끝나고 치는 박수에는 익숙하지 않다. 

무슨 뜻으로 칠까? 

1.하나님께 영광? 

2.아니고.애쓰셨어여요? 

3. 참 잘했어요?)


 드뎌 설교가 끝났다

 두 번째 회중찬양이다

 뒷자리 앉은 남자성도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.

 지금쯤 잠이 깰 시간인지?

 좌우에 날 선 어떤검보다 예리한 말씀의 능력인지? 알수는 없으나 

부드럽게 똑똑한 발음으로 부르는 그 남자 성도의 음성은 나도 덩달아 크게 부르도록 돕는다.

 또 하나 나의 맘의 부담을 줄인 것은

 [주 예수 나의 산 소망] 이 곡을 여러 번 불러 회중 찬양을 맘껏 부를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준 목화자의 배려이다

 그래서 [ 할렐루야 그리스도 나의 산 소망] 이라고 자신 있게 찬양 할 수 있었다


 축도가 끝나자 힘 있게 부르는 찬양대의 폐회송이 

또 한 주간을 그리스도의 편지로 살아야겠다는 나의 다짐을 응원 해 주었다


회중 찬양의 척도가 그 교회의 음악 수준이라 말하면 이건 너무 지나친 개인 소견일까? 

예배순서를 담당하는 분들께 감사를~~~